[경인매일]11월 11일 농업인의 날
- 작성자 : 씨드림
- 등록일시 : 2024-11-12 09:2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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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11월 11일 농업인의 날
김균식 kyunsik@daum.net 2024.11.12 09:04
[경인매일=김균식기자] 어제는 1996년에 정해진 농업인의 날이었다. 28년째 기념하는 이날은 농민들의 생일이기도 하다. 앞서 1964년 강원도 원주에서 처음 농민의 날이 시작되었으니 61회로도 볼 수 있다.
늘 그랬듯이 관련 행사들도 개최되고 이러저러한 명분으로 상도 주고 지역마다 규모가 다른 잔치도 벌어진다. 한문으로 열십자와 한일자를 합하면 흙 토 자가 되는데 토 자가 겹치는 날인 11월 11일이 농민의 날이 된 배경이다. 농사에 대해 국민 모든 분들이 기억하는 공감에는 몇 가지가 있다.
가정 먼저 힘들고 고생스럽다. 돈이 안 된다. 내 자식만큼은 시키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씨앗 값도 안 된다. 갈아엎는다. 홍수 피해나 가뭄으로 말라 죽어가는 작물, 중간 상인들만 좋은 일 시킨다. 추곡수매 값을 인상해라. 농사는 노인들만 하는 일이다.
부정적인 문구들만 떠오른다. 물론 일부에서는 특용작물로 수익을 올린다거나 기계화로 효율성을 높이기도 하지만 현재 독자들에게 하던 일을 그만두고 농사짓겠냐고 질문한다면 과연 얼마나 긍정적 답을 주실까. 필자부터 못 하겠다고 답을 할 것이다. 그래서인가 농사는 아무나 짓는 게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현재 농사짓는 농민은 아무나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걸핏하면 파업에 나서는 다양한 계층의 집단행동처럼 농민이 파업하면 어떻게 될까. 쌀은 수입한다고 치자.
야채나 과일도 수입한다고 치고 간장, 고추장, 된장, 심지어 가공된 김치나 각종 밥상의 반찬류는 어찌할 것인가. 한때는 농사꾼을 무지렁이라 무시한 적이 있었다. 초가집에서 죽어라 일만하고 고된 몸을 누이면 지쳐 잠드는 농민. 그 농민이 한이 맺혀 자식만큼은 서울로 보내 좋은 대학과 일류기업에 취직시키는 게 꿈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가을걷이 모았다가 명절날 자식들이 고향에 오면 온갖 농작물을 바리바리 싸주며 손발은 굳은살이 배어 딱딱하다 못해 갈라진 모습이지만 그래도 귀하디귀한 자식의 입에 들어가는 것이라 아끼지 않았던 모습이 과거의 농민이었다. 그렇게 농사로 키운 자식들이 지금 사회 전 분야에서 떵떵거리며 넥타이 매고 다니는 주인공인 셈이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콤바인으로 논밭을 갈고 병충해는 헬기로 방제하는 시대다.
벼에는 알곡 숫자를 늘이는 첨단과학 영농이 효율성을 높이는가 하면 유실수나 잎채소도 무공해로 생산성을 높이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스마트팜은 인공조명으로 사시사철 녹색 채소를 재배할 수 있으며 3차 가공으로 인한 소비자들의 선택 여지도 높였다.
마트에 가면 정육이나 생선보다 야챗값이 더 싸다. 최근에야 배추나 무, 심지어 시금치 한 단에 만원을 육박할 만큼 몸값이 올랐지만 그래도 아직은 농산물이 가장 저렴한 편이다. 농사를 지어보면 추수할 때까지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지 알게 된다.
씨앗이나 모종을 심을 때는 언제 자랄까 싶지만 비가오고 바람 불고 땅의 기운과 햇살이 도와주면 신기하리만치 조금씩 움트는 새싹이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농작물이 자라는 모습을 타임랩스로 촬영해 보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특히 옥수수나 해바라기처럼 쑥쑥 키가 크는 작물은 자연의 신비를 가장 빠르게 느낄 수 있다.
현대사회는 아무리 첨단과학이 어쩌니 해도 인간이 자연을 가까이 하려는 시도를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아파트 베란다에 심은 화분과 올망졸망 방울토마토라도 키우는 모습이 그러하고 마당에 조그만 공간만 있어도 텃밭을 가꾸려는 것이나 주말농장을 임대해 배추 몇 포기라도 심어보는 것이 그러하다.
필자 또한 고추, 배추, 가지, 오이, 호박은 물론 상추, 대파, 토마토, 옥수수를 심고 가꾸면서 자연의 고마움을 늘 체감한다. 하지만 아무리 잘 해보려 노력해도 해충은 막을 길 없고 며칠만 방치해도 잡초가 작물보다 더 빨리 자라니 일손이 부족하기 마련이다.
마음 같아서야 농약을 치고 싶지 않지만 희석률을 낮춰서라도 뿌려야만 어느 정도 추수가 가능하다. 심는 시기와 종자의 구분, 재배 과정에서 가꾸는 노력은 물론이고 최종 수확할 때 주의해야 할 점도 다양하다. 통상 일반인들이 마트에서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모든 농산물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있다.
눈에 보이는 건 돈으로 산 것이지만 농사를 짓는 농민들의 땀과 정성도 함께 묻어온다는 사실이다. 농민들은 안다. 자신들은 그저 뿌리고 거둘 뿐 모두 자연이 준 선물이라는 점을, 햇살과 비와 바람과 땅의 자양분이 만들어낸 대자연의 신비함이 농산물이다.
문제는 소비자다. 농산물을 눈으로 먹는 게 아닐진대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어불성설의 논리를 적용해 과일을 살 때도 야채를 고를 때도 무조건 보기 좋은 것만 고른다. 그게 얼마나 농민들의 희생을 요구하고 소비자 스스로 농약을 먹어야 하는 원인을 제공했는지 모른다.
요리사는 고객이 짜고 매운 것을 요구하면 소금과 고추장을 추가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농민도 보기 좋은 것만 찾으니 농약을 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벌레 먹은 흔적이 있다고 선택받지 못하니 상품 가치가 없다고 농약을 과다하게 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온 것이 친환경, 유기농법 등 건강에 좋다고 강조하지만 벌레도 못 먹는 것을 사람이 먹고 있다. 과일도 마찬가지다.
조그만 흠집이 있다고 낙과 취급하면 여름 내내 땀 흘려 가꾼 유실수의 결실은 대부분 과즙으로 음료수를 만드는 공장으로 헐값에 보내지거나 심지어 인건비도 안 나온다고 가을걷이 자체를 포기하는 농가도 있다. 무조건 싸고 보기 좋은 상품만 고르는 소비자가 있는 한 농민들의 한숨은 쉽게 줄어들지 않는다.
과일 가게에서 1만 원짜리 멜론이나 5천 원짜리 바나나가 얼마에 매입되어 소비자에게 판매될까. 수입 과일이 저가에 들어와 팔리는 동안 국산 과일은 더 비싼 값에 밀려 소비자의 선택에서 한발 물러서게 된다. 그나마 보기 좋은 것만 찾는 탓에 생산지에서는 힘든 일을 하고도 정당한 소득을 올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할 수만 있다면 우리 농산물을 구입하고 조금 상처가 나고 벌레가 먹었더라도 선택에서 우선시되는 소비자 문화가 필요하다. 그 쉬운 배려가 농민들에게는 보람이고 고마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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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479923